중국 반도체 장비 시장의 지각변동: 자국화 가속화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의 판도가 중국을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2010년 불과 6%에 그쳤던 중국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24년 38%까지 치솟으며 기존 강자들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러한 지각변동의 핵심 동력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자국화 정책이다. 베이징은 2025년까지 자국산 장비 비중을 50%로 끌어올린다는 비공식 목표 아래, 신규 팹 건설 시 자국 장비 채택을 사실상 의무화하고 있다. 이 정책은 중국 내 장비 조달의 공식을 완전히 바꾸며, 현지 공급업체들의 기술력 확보 속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됐다.
가시적인 성과도 뚜렷하다. 2025년 말 기준, 중국 내 반도체 장비의 국산화율은 35%에 도달해 초기 목표치(30%)를 이미 넘어섰고, 2030년까지 80% 자급률 달성이라는 담대한 청사진까지 제시했다. 특히 에칭(식각)과 박막 증착 같은 핵심 공정에서의 발전이 눈부시다. 중국의 나우라 테크놀로지(Naura Technology Group)와 AMEC(Advanced Micro-Fabrication Equipment)가 대표적이다. 나우라는 SMIC의 7나노 공정 라인에서 에칭 장비를 테스트 중이며, 28나노 라인에서는 산화·확산로 점유율이 60%를 상회한다. AMEC의 5나노 에칭 장비는 이미 TSMC의 첨단 공정 라인에서 성능 검증 단계에 진입한 상태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SMIC의 행보는 기술적 제약을 극복하려는 중국의 의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SMIC는 네덜란드 ASML의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없이 구형 심자외선(DUV) 기술만으로 5나노급(N+3) 칩 양산에 성공했다. 물론 낮은 수율과 높은 생산 비용이라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하지만, 이는 상당한 엔지니어링 성과로 평가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중국 장비 업체들의 글로벌 위상도 달라졌다. 2025년 전 세계 웨이퍼 팹 장비(WFE)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의 점유율은 6.5%로, 2021년 1.2%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같은 기간 비중국 상위 기업들의 평균 매출 성장률이 9.3%에 머문 반면, 중국 기업들은 30.5%라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며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증명했다.
글로벌 경쟁 환경 재편과 주요 기업들의 전략
중국의 굴기는 미국, 일본, 유럽의 기존 장비 강자들에게 직격탄이 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강력한 수출 통제가 오히려 중국의 자체 기술 개발을 촉진하는 자충수가 된 셈이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pplied Materials), 램리서치(Lam Research), KLA 등 미국 기업들은 과거와 달리 분절되고 지역화된 시장 환경에 직면했다. 실제로 2025년 램리서치는 메모리 시장 회복에 힘입어 28.4%의 견조한 매출 성장을 달성했지만,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는 -1.6%의 역성장을 기록하며 희비가 엇갈렸다.
물론 일본 기업들의 저력은 여전하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의 30%를 점유하며 핵심 플레이어의 입지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특히 코터/디벨로퍼(88%), 실리콘 웨이퍼(53%), 포토레지스트(50%) 등 특정 장비와 소재 시장에서는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도쿄 일렉트론(Tokyo Electron), 어드반테스트(Advantest), 스크린(SCREEN) 등 일본의 주요 장비 업체들은 2024 회계연도에 매출 증가를 기록했는데, 이는 중국의 성숙 공정용 장비 수요 확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럽 역시 ASML을 필두로 2024년 세계 장비 시장의 30.3%를 차지하는 강력한 축이다. ASML은 리소그래피, 특히 패터닝 분야에서 90%라는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EU의 ‘유럽 칩스 법’은 2030년까지 역내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로 두 배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변수는 존재한다. 중국이 DUV 기술을 고도화하고 잠재적으로 EUV 장비 개발에 나설 경우, 장기적으로 ASML의 중국 매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2025년 기준 ASML 전체 매출의 29.4%가 중국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향후 전망 및 투자 시사점
중국의 반도체 장비 자국화는 더 이상 변수가 아닌 상수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과 경쟁 구도를 영구적으로 바꾸는 구조적 변화이며, 기존의 미국, 일본, 유럽 장비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의 점유율 하락 압박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중국 기업들이 성숙 공정을 넘어 7나노, 심지어 DUV 기반의 5나노급 공정 기술력까지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위협 신호다.
투자자라면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자금 투입 규모에서 눈을 떼서는 안 된다. 중국의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 이른바 ‘빅펀드’는 2024년 3차 펀드를 통해 3,440억 위안(약 490억 달러)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반도체 공급망 강화에 쏟아붓고 있다. 결국 글로벌 장비 기업들은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과 강력한 경쟁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새로운 현실에 직면했다. 첨단 패키징이나 특정 niche 시장 등 중국이 아직 따라오지 못한 ‘초격차’ 기술력 확보만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