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반도체 양분화 심화: 중국 자립 가속화 분석

미·중 반도체 시장, 두 개의 생태계로 양분 가속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며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두 개의 생태계로 갈라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강력한 수출 규제가 중국의 기술 자립을 부채질하는 기폭제가 됐다. 한때 90%를 넘나들던 엔비디아의 중국 AI 칩 시장 점유율이 2026년 초 기준 50% 수준으로 급락한 것이 이 흐름을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다.

미국이 꺼내 든 카드는 ‘작은 마당, 높은 울타리(Small yard, High fence)’ 전략이다. 2024년 12월, 140개 중국 기업을 겨냥해 첨단 반도체와 HBM은 물론, 식각·증착·리소그래피 등 핵심 장비 수출까지 옭아맸다. 중국의 AI 및 슈퍼컴퓨팅 기술 발전을 늦추고 첨단 반도체 자급을 원천 차단해 기술 우위를 유지할 시간을 벌겠다는 전략적 포석이다.

이러한 미국의 압박에 맞서 중국은 제재를 오히려 기술 자립의 발판으로 삼았다. 막대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반도체 생태계 내재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의 반도체 장비 자급률은 2024년 25%에서 2025년 말 35%로 치솟으며 당초 목표(30%)를 초과 달성했다. NAURA가 2024년 글로벌 장비 기업 8위에 이름을 올렸고, AMEC와 Piotech 등도 식각 및 박막 증착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첨단 공정에서의 약진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SMIC는 2025년 5.3%의 점유율로 글로벌 3위 자리에 올랐다. 화웨이는 SMIC의 N+2/N+3 공정을 기반으로 7나노와 5나노 칩 생산에 성공했으며, ‘로직 폴딩’ 같은 신기술로 트랜지스터 밀도 향상을 꾀하고 있다. 심지어 2025년 초 선전의 한 연구소에서 ASML 출신 엔지니어들이 EUV 리소그래피 프로토타입을 역설계로 완성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2028~2030년으로 예상되는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궁극적으로 EUV 기술 장벽을 넘겠다는 중국의 집요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가장 위협적인 분야는 성숙 공정(28나노 이상)이다. 2023년 이미 세계 시장의 33%를 장악한 중국은 2026년 전 세계 성숙 공정 생산 능력의 39~40%를 차지할 전망이다. 이 같은 물량 공세는 대만 UMC,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스 등 기존 강자들의 수익성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며, 범용 D램 및 전력 반도체 시장의 ‘치킨 게임’을 예고하고 있다.

시장의 분절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게 거대한 도전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세계 유일의 EUV 장비 업체 ASML의 경우, 2024년 3분기 47%에 달했던 중국 매출 비중이 2025년에는 20% 수준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기업들 역시 완전한 디커플링 시 770억 달러의 매출 손실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이는 한국, 유럽, 대만, 일본 기업에게 일부 반사이익을 줄 수도 있지만, 전체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결국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초양극화(Hyper-bifurcation)’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더 이상 단일화된 글로벌 공급망에 기댈 수 없는 시대다. 이제 기업과 투자자들은 각 기술 블록 내 핵심 플레이어의 부상과 자립화 속도를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특히 중국 내수 시장의 팽창, 성숙 공정발 경쟁 격화,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중국의 기술적 돌파 가능성은 향후 공급망 및 기술 제휴 전략을 재편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이 경택
이 경택

AI·반도체·에너지 분야 전문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KatoPage의 운영자입니다. 스마트시티 개발, 반도체 클러스터 인프라 기획, 신사업 개발 분야에서 다년간 실무 경험을 쌓았습니다. 빅데이터 분석,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도시 개발, 신재생에너지 시스템 등 다양한 기술·산업 분야를 실무자 시각으로 깊이 있게 분석합니다.

기사 : 512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