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강국 한국, 물 위기 해법 모색
매년 1억 톤. 홍콩 인구 전체가 사용하는 물의 양이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 쏟아부어진다. 반도체 강국이라는 타이틀 뒤에 가려진 한국의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이미 1995년부터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된 상황에서, 첨단 산업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바로 이 중차대한 과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내일 대구 엑스코에서 ‘대한민국 국제물주간 2026’이 막을 올린다.
9월 9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이번 행사의 주제는 ‘물, 에너지, AI: 우리의 미래를 지키다’로, 이름 그대로 세 가지 요소의 융합을 통한 자원 확보 전략을 정조준한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생존이 걸린 지속 가능성 문제가 핵심 의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대구광역시, K-water 등 주요 기관이 공동 주최하는 만큼, 이번 물주간은 한국의 물 안보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반도체 산업의 물 수요 증대와 AI 솔루션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 이면에는 ‘물과의 전쟁’이 있다. 삼성전자 국내 사업장만 해도 2022년 하루 평균 344,000톤의 물을 사용했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물 사용량은 불과 6년 만에 40%나 급증했다. 2035년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의 물 수요가 20억 톤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까지 나온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물 공급 문제로 지연되고, 하루 65만 톤의 물이 필요한 호남 반도체 복합단지 계획이 거론되는 것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단순히 물의 양이 아니다. 첨단 반도체 공정에는 불순물이 전무한 ‘초순수(Ultrapure Water)’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한국은 초순수 생산의 핵심 기술, 장비, 운영 시스템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이는 언제든 터질 수 있는 공급망 리스크이며, 기술 자립이 시급한 이유다. 이번 국제물주간의 특별 세션인 ‘물-에너지-AI: 반도체 산업을 움직이는 세 가지 힘’에서 바로 이 기술적 난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이러한 위기 상황의 돌파구로 인공지능(AI)이 떠오르고 있다. AI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물 관리 시스템의 패러다임을 바꿀 게임 체인저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공급망 누수를 예측하고, 정수 처리 공정을 최적화하며, 장비 고장을 사전에 감지하는 등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효율성을 제공한다. 정교한 수요 예측과 자원 할당을 통해 운영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에너지 집약적인 물 처리 과정의 효율을 극대화해 탄소 배출량 감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도 있다.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통합 전략
정부 역시 팔을 걷어붙였다.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의 폭증하는 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10년 단위의 국가 물 관리 기본계획을 전면 개편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과거 전력 공급 계획처럼 물 관리의 패러다임을 유연하게 전환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K-water가 하수 처리장 폐수를 재사용 가능한 수준으로 정화하는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는 등, 물 재활용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반도체 산업의 물 발자국을 줄이고 국가적 위기 대응력을 키우는 길이다.
결국 한국이 글로벌 반도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열쇠는 물, 에너지, AI의 통합 전략에 달려 있다. 물 관리에 AI를 전면 도입하고, 초순수 기술 자립을 이루며, 폐수 재이용률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이는 환경 보호를 넘어 국가 산업의 명운이 걸린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 정부와 기업의 과감한 투자, 그리고 국경을 넘는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이번 국제물주간에서 나올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파트너십이 한국 미래 산업의 지형도를 새로 그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