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안보·탄소중립, 아세안의 원자력 재점화
2023년 COP28에서 전 세계 원자력 발전 용량을 3배로 늘리자는 선언이 나온 뒤, 동남아시아의 ‘원자력 시계’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이 단 한 곳도 없는 이 지역에서 원자력이 급부상한 배경에는 급증하는 전력 수요, 화석연료 의존 탈피, 탄소중립이라는 삼중고가 자리한다. 과거 비용과 안전 문제로 번번이 좌초됐던 대형 원전 대신, 이제 그 중심에는 소형모듈원자로(SMR)가 있다.
SMR, 동남아 맞춤형 대안으로 부상
SMR이 동남아의 ‘게임 체인저’로 떠오른 이유는 복합적이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기저부하 전력원으로서 에너지 안보를 담보하고,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며 24시간 무탄소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여기에 대형 원전보다 초기 투자비가 적고 건설 기간이 짧으며,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지리적 특성에 맞는 분산형 전력망 구축에 유리하다는 장점까지 더해졌다. 이러한 매력 때문에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주요 아세안 국가들은 이미 SMR 도입을 국가 에너지 계획의 핵심으로 격상시키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는 중이다. 리서치 기관 우드 맥켄지는 2050년까지 이 지역의 원자력 발전 투자 규모가 2,080억 달러에 달할 것이며, SMR이 그 중심에 설 것으로 내다봤다.
주요국 동향과 경쟁 구도
필리핀은 2032년 첫 상업용 원전 가동을 목표로, 1984년 완공 후 멈춰선 바탄 원전의 재가동과 SMR 신규 도입 카드를 동시에 만지작거리고 있다. 독립 규제기관 PhilATOM 설립으로 제도적 기반도 다졌다. 가장 발 빠른 국가는 베트남이다. 2016년 중단했던 원전 계획을 공식 부활시키고 러시아 로사톰(Rosatom)과 닌투언 1호기 건설 계약까지 마쳤다. 인도네시아 역시 2032년 500MW 규모의 첫 원전 가동을 목표로 서부 칼리만탄을 SMR 부지로 낙점하고 미국, 러시아 등과 협력 방안을 타진 중이다.
동남아 시장이 열리면서 미국, 러시아, 한국, 중국 등 기술 공급국들의 수주 경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SMR 시장 선점을 위한 각국의 외교전과 기술 지원 경쟁은 이미 본격화된 모양새다. 이들은 기술 협력, 타당성 조사, 인력 양성 등 다방면에서 파트너십을 제안하며 시장 선점을 위한 치열한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다.
향후 전망과 관전 포인트
동남아의 원자력 도입은 더 이상 막연한 계획이 아닌, 구체적인 실행 단계로 접어들었다. 투자자라면 앞으로 각국의 규제 프레임워크 확립 과정, 첫 SMR 건설 계약의 주인공, 그리고 기술 공급국 선정 이면의 지정학적 역학관계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2026년 아세안 의장국을 맡는 필리핀이 원자력 협력을 주요 의제로 띄울 가능성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동남아시아의 ‘원자력 클럽’ 가입 성공은 전 세계 에너지 지형과 탄소중립 로드맵을 뒤흔들 중대한 변곡점이다.
참고문헌
- energy.gov — energy.gov
- spglobal.com — spglobal.com
- nucnet.org — nucnet.org
- woodmac.com — woodmac.com
참고문헌




